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
Pope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매우 온화한 분이셨습니다. 어떤 경우엔 사람들이 악의는 없었지만 그분을 이용하고 행보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분을 포위하고 있었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매우 섬세한 인물이었지만 나약하지 않고 강인했습니다. 겸손한 그분은 강요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고통을 겪으셨죠.”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3일 출간 예정인 신간 『후계자』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얽힌 기억을 이 같이 술회했다. 『후계자』는 스페인 언론인 하비에르 마르티네스 브로칼과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그분은 저를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많이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셨죠. 그분은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사안이 있으면 서너 번 생각하신 후에야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그분은 제가 성장하도록 자리를 비켜주셨고, 저에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교황은 바티칸에서 약 10년간 공존했던 전임교황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분은 저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셨고 결코 간섭하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한 번은 그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이 있었는데 저에게 태연하게 설명을 요청하셨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결정은 당신에게 달렸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그분에게 이유를 설명했고 그분은 기뻐하셨습니다.”
교황은 책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자신의 결정에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분은 저에 대한 지지를 한 번도 철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동의하지 않는 사안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결코 입 밖에 내지는 않으셨습니다.”
교황은 또 2022년 12월 28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마지막으로 만나 그와 작별했던 상황도 기억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침상에 누워 계셨습니다. 여전히 의식은 있었지만 말은 하지 못하셨죠. 저를 바라보시고, 제 손을 꽉 잡으시고, 제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셨지만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분의 손을 잡고 있었어요. 그분의 맑은 눈이 기억납니다. 저는 그분에게 다정하게 몇 마디를 건네고 그분을 축복했습니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나눴죠.”
교황은 ‘교황의 연속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역대 교황들에게서 각각의 교황들이 모두 다르지만 언제나 연속성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봅니다. 연속성 안에서 각 교황은 자신만의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연속성이 있었지 단절은 없었습니다.”
교황은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옹호를 받았던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했다. “혼인에 관한 제 발언에 충격을 받은 몇몇 추기경들이 그분을 만나러 갔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그분과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분은 그 추기경들에게 매우 분명하게 대답해 주셨는데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어느 날 그들이 저를 상대로 사실상 재판을 하려고 그분의 집에 찾아가 제가 동성 커플의 혼인을 지지한다며 저를 비난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제 생각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에 동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다 듣고 진정시키신 다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혼인은 성사이기 때문에 동성 커플의 결합에 축복을 내릴 순 없지만, 어떻게든 이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 민법상 보장이나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엔 ‘시민연대계약’ 방식이 있는데, 언뜻 보기엔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예를 들어 의료 서비스, 상속, 주택 등을 공유해야 하는 노인 연금 수급자 3명이 한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흥미로운 해결책처럼 보인다는 뜻이었죠. 당시 추기경들은 이런 내막을 오해하고 제가 이단적인 발언을 한다고 말하기 위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면서도 그들이 품위 있게 사안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그건 이단이 아닙니다.’ 그분이 그렇게 저를 옹호해 주셨어요! 그분은 항상 저를 옹호해 주셨습니다.”
이 책에서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종 당시 출간된 책들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도 답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선종 당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은 책이 출간돼 매우 슬펐습니다. 큰 고통을 안겨줬죠. 물론 저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별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이용됐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선종 당시 그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고귀함과 인간성의 결핍을 느꼈습니다.”
끝으로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 전부터 이미 교황 장례 절차 개정에 착수했다면서, 교황의 시신을 관 밖에 모시고 작별 인사를 하는 예식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교황도 모든 그리스도인처럼 품위 있게, 그러나 교회의 다른 자녀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묻혀야 한다”고 말했다.
번역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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