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순교자는 복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인”
Edoardo Giribaldi
“저는 순교자들이 희망에 대하여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청 시성부가 주최한 컨퍼런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순교와 목숨을 내놓는 것”이 11월 14일 막을 내렸다. 이날 사도궁 클레멘스 홀에서 컨퍼런스 참가자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요한 15,13)이라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러한 용기를 보여준 이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교황은 순교자에게서 “완전한 제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순교자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아 십자가의 “구원 권능”과 “한없이 자신을 온전히 선물로 내어줄 줄 아는” “탁월한 증거”를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십자가에서 솟아나온 사랑
교황은 “오직 사랑만이 십자가의 참뜻을 밝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랑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용서하며, 우리의 고통 속으로 들어와 그것을 견딜 힘을 준다”고 말했다. “죽음마저도 받아들여 그것을 이기고 우리를 구원하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는 하느님의 모든 사랑이, 그분의 한없는 자비가 깃들어 있습니다.”
“자신을 내어 맡겨 변화되도록”
교황은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노력”이나 “희생과 포기에 대한 개인적인 결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권능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 변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교황은 “그 사랑은 우리를 초월한다”며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한계를 넘어서서도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이 “보편적 성화 소명”을 설명하며 “그리스도인 삶의 충만함”과 “애덕의 완성”을 언급한 것의 의미를 강조했다. 아울러 이는 “지상 사회에서도 더욱 인간다운 생활 양식”을 일궈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시복 시성을 위한 소임
교황은 이러한 관점이 “시복 시성을 위한” 소임에도 빛을 비춘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 소임이 교회가 드리는 “귀한 봉사”라며 “살아있는 성덕의 표징이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교황은 순교자를 복자품에 올리는 데는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순교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자
교황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이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크게 존경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초대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목숨으로 값을 치른 이들”의 무덤을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삼았다고 떠올렸다. 아울러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무덤에 모여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의 한계를 뛰어넘는 형제애의 유대를 더욱 굳건히 했다”고 강조했다. “그 죽음이 아무리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다 해도 말입니다.” 교황은 연설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신실했던 리비아 정교회 신자들의 순교”를 언급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백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 그들은 정교회 신자들이잖아요!’ 그러나 그들도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은 순교자이며, 교회는 그들을 친히 우리의 순교자로 공경합니다. 순교 앞에서는 모든 이가 평등합니다. 우간다의 성공회 순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순교자들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을 진정한 순교자로 받아들입니다.”
순교의 세 가지 본질
교황은 시복 시성 과정에서 교회가 정립한 “순교의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설명했다. 첫째는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폭력적이고 때 이른 죽음”을 받아들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교황은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인 사람도 피의 세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신앙이나 신앙과 관련된 다른 덕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힌 박해자에게 당하는 죽음”이고, 셋째는 희생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본받아 예기치 않은 사랑과 인내, 온유의 태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는 것은 순교의 개념이 아니라, 특정 역사적 맥락 안에서 순교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방식입니다.”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교황은 오늘날에도 많은 순교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사람들의 “정의와 진리, 평화,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다가 박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가경자 비오 12세 교황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다양한 “순교 사례”를 연구하는 이들이 “각각의 표징과 증거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모두 종합적으로 다룰 때” “도덕적 확실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이 설립한 ‘새 순교자-신앙의 증인 위원회’
교황은 희망을 주제로 한 2025년 희년을 맞아 교황청 시성부에 ‘새 순교자-신앙의 증인 위원회’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의 임무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버릴 줄 알았던” 이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에도 순교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성덕에 이르는 새로운 길
교황은 자신이 반포한 자의 교서 「이보다 더 큰 사랑」(Maiorem hac dilectionem)을 언급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성덕에 관한 하느님 백성의 공통 감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이 문헌을 통해 “시복 시성 절차를 위한 새로운 길”을 정립하려 했다면서 “목숨을 내놓는 것과 때 이른 죽음 사이에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종’이 적어도 일반적 수준으로 그리스도인의 덕행을 실천했어야 하며, 특히 ‘하느님의 종’의 죽음 이후에도 성덕과 표징에 대한 명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고 덧붙였다.
목숨을 내놓는 것
교황은 “박해자의 모습은 없지만”, ‘목숨을 내놓는 것’의 특징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이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내어놓아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성덕의 탁월한 증거에서도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한없이 자신을 온전히 선물로 내어줄 줄 아는 그리스도인 삶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합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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